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여행의 이유>, 김영하
    읽다 2020. 8. 28. 07:25

    조카를 보러 갔다가 거실에 켜진 TV로 <신박한 정리> 오정연편을 보게 되었다.

    그리 작은 집이 아닌데도 물건들로 넘쳐나는 방들을 보며 내 삶을 엿보는 것 같아 부끄럽기도 하고 한숨도 나오고...

    수집벽이 있는지 오정연씨는 추억이 담긴 물건들을 쉬이 버리지 못하고, 지인들을 챙기기 위한 선물과 상자들을 모아두고, 하고 싶은 것이 많아 여기 저기 취미생활 용품들이 넘쳐나고 있었다.

    <신박한 정리>팀은 집주인인 오정연을 설득해 과감한 비우기에 돌입한다.

    다른 공간들도 비움이 혁신적으로 일어났지만, 옷방 사례 하나로 나머지 공간들의 환골탈태를 상상할 수 있으리라.

    올케는 산더미처럼 쌓아두고 사는 오정연씨의 삶을 보며  "저건 게으른 거예요." 라고 하기에, 나는 내일처럼 변명을 했다.

    "하고 싶은 일이 많은 사람이 우선 순위를 정리보다 하고 싶은 일에 두다 보니 저렇게 된거야."

    "그래도 전 이해가 안돼요."

    그렇잖아도 잘 버리지 못하는 성격의 나도 만만치 않게 물건이 쌓여있는지라 올케의 말이 신경이 쓰여 귀가한 후 곧장 서재처럼 쓰고 있는 거실의 책장 정리부터 들어갔다. 이미 읽었지만, 언젠가 한번쯤 필요할지 몰라 맨위칸을 차지하고 있던 전공 서적들을 00마켓앱에 내놓아 1차로 팔아 치웠고, 청소년들이 읽으면 좋을 책은 지인에게 한 상자 주고, 전공 비스므리 한 최근 책들도 영역별로 구분해서 00마켓에 올렸다. - 100여권이 처리되었다.

    마지막으로 구입한 지 얼마 안된 책들은 알라딘에 팔기로 하고 기억해둘 부분들을 정리하기에 들어갔다. 책을 팔기 위해 책을 다시 읽고 있는 중인데, 내가 이 책을 읽은 게 맞나 싶을 정도로 내용들이 새롭다.

     

     

    김영하의 《여행의 이유》에서는  집필을 위해 중국으로 출국했던 작가가 비자를 챙기지 못해 추방되어 돌아온 에피소드로 시작한다. 그래 이건 기억이 난다.

    그는 여행의 여정에서 최초로 맞보게 되는 달콤한 순간을 예약된 호텔 문을 열고 들어갈 때라고 말하며 호텔과 집의 특성을 구분한다. 호텔은 집이 아니다. 집은 의무의 공간이라 해야할 일들도 넘쳐나고 오래 살아온 집일수록 상처가 있어 잡다한 기억들을 소환시킨다. 그에 반해 잠깐 머무는 호텔은 '슬픔을 몽땅 흡수한 것처럼 보이는 물건'들로부터 완벽하게 자유롭다는 것이다. - 그래 이 부분도 읽은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그런데 낯설게 다가오는 에피소드는 후반부에 있었다. 4장 여행하는 인간, 호모 비아트로에는 유인원과 97% 유전자를 공유하는 인간이 그들과 결정적으로 다른 게 있는데 고릴라, 오랑우탄, 침팬지 등은 인간에 비해 활동량이 현저히 적다는 이야기를 꺼낸다. 그들은 대부분의 시간을 털을 다듬는데 쓰며 운동이라고는 거의 하지 않는데 왜! 인간과 같은 대사증후군이나 심혈관 질환이 없느냐는 것이다. 동물원의 침팬지조차도 고혈압, 당뇨병에 걸리지 않는 이유는 무엇이란 말인가.

     

    유인원과 달리 초기 인류는 나무에서 내려와 걷고 뛰었다. 탄자니아의 하드자족은 하루 평균 9km에서 12km를 이동하는데, 이는 평균적인 미국인이 일주일 동안 걷거나 뛰는 거리와 비슷하다고 한다. 인류는 치타처럼 빠르지 않고 사자처럼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을 갖고 있지 않았다. 대신 인간에게는 무시무시한 이동 능력과 지구력이 있었다.

     

    BBC 방송의 다큐멘터리 <인간 포유류, 인간 사냥꾼>은 ‘인간은 특이한 타입의 포유류이다’라는 내레이션으로 시작한다. 초기 인류의 사냥 방식을 엿볼 수 있는 이 다큐멘터리에서 칼라하리사막의 한 부족은 집단으로 쿠두 영양 사냥에 나서는데, 이들의 방식은 내가 지금까지 생각해왔던 것과는 많이 다르다.

    그들은 사냥감의 냄새와 흔적을 따라 뛰고 또 뛴다. 목표를 무리에서 고립시키면서 추적을 계속한다. 땡볕 아래에서 그들은 무려 여덟 시간이나 영양을 쫓는다. 그들이 사냥감을 마침내 잡게 되는 것은 누군가 활을 잘 쏴서도 아니고, 창을 잘 던져서도 아니다. 영양은 탈진하여 무릎을 꿇고 주저앉는다.

    그러면 그들은 창을 들고 사냥감 가까이 다가간다. 탈진한 영양은 모든 것을 포기한 듯, 자신을 집요하게 추적해온 포식자에게 몸을 맡기듯 눈을 끔뻑인다. 사냥꾼은 창으로 단번에 사냥감을 죽인 후, 흙을 뿌려 여덟시간 동안 자신들의 추적을 따돌린 쿠두에게 존중을 표하고 머리와 몸을 정성스레 쓰다듭는다.

     

    " rel="noopener" data-mce-href="http://">http://

     

    아, 이 영상은 끝까지 봐야한다. 자연과 공존하며 사는 맨몸의 인간이 생존을 위해 줄창 달리는 모습은 숭고하기까지 한다.

     

    이 부분에는 주석으로 멕시코 산악지대에 살며 Run-down 방식으로 사냥감을 끈질기게 추적하여 잡는 라라무리 부족이야기도 나온다. 이 부족 출신의 로레나 라미레스는 샌들과 치마를 입고 50km의 울트라 트레일 세로 로호 마라톤에서 1등을 한다. - 그녀의 이야기는 다큐로 제작되어 넷플렉스에서 볼 수 있다고 한다.

     

     

    로레나 라미레스. 2017. 05.23 뉴시스

     

    2007년 하버드대 고고학과와 유타대 생물학고 합동 연구팀은 원시 인류가 사냥감이 지쳐서 쓰러질 때까지 뛰어서 쫓아가도록 진화했다는 것을 밝혀냈다는 이야기까지 이어지고.

     

    그러니까 인간은 하루 10여km 이상을 뛰어다니도록 진화했다는 것인데, 어쩔 수 없이 동물원의 침팬지처럼 집콕을 하는 현 상황은 없던 병도 생길 수 밖에 없는 조건이 형성되어 버렸다.

     

    자, 다시 책 제목으로 돌아가자. 인간은 왜 여행을 떠나는가.

    수만년전 우리의 유전자는 사냥을 하도록 각인되어서 그랬다는 이유 말고, 작가는  노바디 nobody가 되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젊은 날의 나는 특별한 존재가 되기를 바랐지만, 나의 인종이나 국적에 따라 ‘특별하게’ 분류되고, 일단 분류된 이후에는 사실상 눈에 보이지 않게 되는 경험은 그전까지는 한번도 해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여행자는 낯선 존재이며, 그러므로 더 자주, 명백하게 분류되고 기호화된다. 국적, 성별, 피부색, 나이에 따른 스테레오타입이 정체성을 대체한다. 즉, 특별한 존재자somebody가 되는 게 아니라 그저 개별성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여행자는, 스스로를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이, 결국은 ‘아무것도 아닌자’ 노바디nobody일 뿐이다. 154~155

     

    실뱅 테송의 말처럼 여행이 약탈이라면 여행은 일상에서 결핍된 어떤 것을 찾으러 떠나는 것이다. 우리가 늘 주변에서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이라면 뭐하러 그 먼길을 떠나겠는가.

    여행지에서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아무것도 아닌자’가 되는 순간을 경험하게 된다. 여행은 어쩌면 ‘아무것도 아닌자’가 되기 위한 것인지도 모른다.

    나이가 들면서 점점 더 사회적으로 나에게 부여된 정체성이 때로 감옥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많아지면서 여행은 내가 누구인지를 확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누구인지를 잠시 잊어버리러 떠나는 것이 되어가고 있다. 179~180

     

    남의 땅에서 우리의 힘은 약해진다. 약해지지 때문에 더더욱 자기 존재를 타인으로부터 확인받고 싶어한다. 그럴 때 우리는 그들의 환대와 인정, 선물이 필요하다. 물론 자본주의는 이런 습격을 부드러운 거래로 바꾸었다. ...

    그러니 현명한 여행자의 태도는 키클롭스 이후의 오디세우스처럼 스스로를 낮추고 노바디로 움직이는 것이다. 여행의 신은 대접받기 원하는 자, 고향에서와 같은 지위를 누리고자 하는자, 남의 것을 함부로 하는 자를 징벌하고 스스로 낮추는자, 환대에 감사하는 자를 돌본다.

    2800여 년 전에 호메로스는 여행자가 지녀야 할 바람직한 태도를 오디세우스의 변화를 통해 암시했다. 그것은 허영과 자만에 대한 경계, 타자에 대한 존중의 마음일 것이다

     

    아~ 어서 하늘길이 자유로와져, 나도 그 어딘가의 호텔에서 노바디가 되어 아침을 맞이하고 싶으다.

    《여행의 이유》.hwp
    0.10MB

     

     

     

     

     

     

    반응형

    댓글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