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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 《작별하지 않는다》, 한강, 문학동네 2021
    읽다 2022. 2. 9. 15:19

    역사가 스포인 소재를 소설이나 영화로 만들 경우 소설가나 영화감독의 역량이 제대로 드러나지 않나 싶다.

    한강의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 는 광주 5.18민주화 운동을 소재로 한 《소년이 온다》에 이어 제주 4.3을 정면으로 다룬 소설이다. 한강의 글은 자료를 충분히 내면화하여 온몸으로 쓴 듯한 흔적이 있어 그녀가 제주 4.3을 소재로 한 책을 낸다기에 '아... 또 얼마나 아프려고... ' 이런 생각을 했었다.

    소설 첫 페이지
    출처 :https://han-kang.net/

    시작은 《소년이 온다》를 쓰고난 후 2014년에 꾸었던 꿈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야트막한 산에 세워진 검은 나무 군상들이 묘비처럼 느껴졌고, 그녀는 이 꿈을 영상으로 담는 작업을 진행한 후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출처: https://han-kang.net/

    《작별하지 않는다》에는 크게 화자가 셋이다. 소설가인 경하는 제주도에서 나고 자라 전문대 사진학과를 졸업한 후 사진과 다큐멘터리를 찍다가 목수로 전향한 인선으로부터 어느날 신분증을 들고 병원으로 와달라는 연락을 받는다.

    경하는 광주관련 소설을 쓴 후 심리적으로 피폐해진 상태에서 이혼을 하고 삶의 의욕을 상실한 채 마지못해 살아가고 있던 중이었다.

    몇 년 전 경하는 제주도에서 목수 생활로 생계를 이어가던 인선에게 자신이 꾸었던 꿈 얘기를 하며 그 꿈을 현실화하는 작업을 같이 하자고 제안을 했었다. 차일 피일 각자의 사정으로 미뤄진 것이 사년.

    어느날 경하는 인선에게 그 작업을 (시작도 안했지만)그만 두겠다고 말을 하지만 인선은 평소 버릇처럼 '뭐 일단 나는 계속하고 있을 테니까'라고 응수한다. 그리고 사고가 났던 것이다.

    손가락 절단 사고. 다행이 제때에 그녀를 발견한 이웃의 도움으로 손가락 봉합 수술은 성공적으로 마쳤으나 봉합부위에 딱지가 앉으면 안되기 때문에 3분에 한번씩 바늘로 피를 흘려내보내는 고통에 시달려여 한다. 무려 3주동안.

    아니, 그곳뿐만 아니라 그 비슷한 일이 일어났던 모든 곳에 있었던 사람들 말이야.
    총에 맞고,
    몽둥이에 맞고,
    칼에 베여 죽은 사람들 말이야.
    얼마나 아팠을까?
    손가락 두 개가 잘린 게 이만큼 아픈데,
    그렇게 죽은 사람들 말이야, 목숨이 끊어질 정도로
    몸 어딘가가 뚫리고 잘려나간 사람들 말이야.

    학살 희생자에 대한 아픔을 이토록 생생하게 묘사할 수 있을까 싶은 대목이다. 실제로 손가락 봉합 수술 관련 소재는 작가의 친구 사례였다고 한다.

    애초에 이 소설은 눈 3부작으로 구상되었다가 장편으로 이어졌다는데 그녀의 소설 <작별>에 이은’눈’의 최종편이다.

    ‘우리는 따뜻한 얼구을 가졌으므로 그 눈송이들은 녹았고’는 복선이다.

    인선의 어머니는 4.3 과정에서 부모님과 형제들을 잃었다. 학살이 있고난 다음날 가족을 찾기 위해 어린 두 소녀가 사망자의 얼굴을 일일이 닦아내며 가족들 찾기에 나섰다. 죽은 자의 얼굴에는 눈이 쌓이는 것이다.

    《작별하지 않는다》는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1부가 새이다.
    인선은 두 마리의 새를 키우고 있었는데 한마리는 죽고 남은 한 마리가 방치되어 있기에 경하에게 제주도로 내려가 새에게 모이를 줄 것을 부탁한다.

    새는 위가 작아서 사흘이상을 굶으면 죽기 때문에.
    ‘포식자들에게 표적이 되지 않으려고 본능적으로 견디는’새의 운명은 어딘가 이 시대의 ‘을’들을 닮았다.
    약해보이면 안돼. 쎈 척해야 그나마 착취당하지 않을 수 있어. 하는 것 같은.

    대기가 순환한다면 오늘 내리는 눈은 수십년전 내렸던 그 눈, 그 비였을 수도 있다.
    결과적으로 경하는 새를 살리지 못했다.
    그런데 예민할대로 예민해진 그녀는 인선의 제주집에서 인선의 혼을 만난다.

    그녀에게 이끌려 함께 작업을 하려 했던 산등성이를 오르고 그녀가 그토록 그 작업에 몰두했던 이유를 경하의 엄마가 모아두었던 4.3자료를 보며 알게 된다.

    공산화를 막기 위한 희생양이 되었던 섬의 주민들. 그 속에는 ‘절멸’이라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죽은 열살 미만의 아이들이 1500명이나 되었다.

    마지막 글은 4.3 계기수업 자료로 쓸까 해서 장문을 옮겨보았다.

    한강의 글은 낱말 하나하나를 섬세하고 고르고 배치한 듯한 느낌이 들어 휘뚜루마뚜루 읽을 수 없다. 천천히 그녀의 호흡을 따라 읽어가게 된다. 그러다보면 그녀의 아픔이 절절하게 느껴진다.

    《작별하지 않는다》는 아직 죽어간 넋들이 안식을 찾지 못했기 때문에 그들을 잊지않겠다는 선언이다. 아직은 그들과 작볋할 때가 아니다. 밝혀내고 사과하고 용서받을 일들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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