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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룰루 밀러, 곰출판, 2021읽다 2022. 7. 5. 17:36
독특한 제목이 눈길을 끌었지만, 읽어 내야할 책들이 많아서 '언젠가는...' 범주에 넣었던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옆자리의 보경샘이 강추하기에 읽어야할 책들을 밀어내고 주말 내내 붙들었다.
보경샘은 아무 정보 없이 읽어야한다고, 초반엔 재미가 없으나 6장 넘어가면서 흥미진진하다고 추임새를 많이 넣어서 어떤 장르인지도 모른 체 죽죽 읽어 나갔다.
분류하자면 과학 에세이지만, 전기문 같기도 하고 자전적 소설 같기도 하다. 장르의 모호함이 책의 주제와도 닮았다. 시작은 현 스탠포드 대학의 초대 학장이었던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어릴 적 삶 속으로 들어간다.
어릴 적 그는 주변 사물에 관심이 깊었다. 처음엔 별자리에서 시작되어 천체의 지도를 섭렵하자 인근 마을을 시작으로 지구촌의 지도를 그려나가면서 사춘기에는 식물을 성인이 되어서는 어류 분류학자의 거장이 되어간다.
저자 룰루 밀러가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삶을 반추한 이유는 한순간의 실수로 사랑을 잃고 혼돈에 빠진 자신의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조던의 삶에서 힌트를 얻고 싶어서였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삶이 저자의 눈길을 끈 이유는 1906년 샌프란시스코 대지진으로 인해 그의 평생의 업적(어류 분류)인 표본들이 와르르 무너져 내린 속에서 불굴의 의지로 자신이 구축한 세계를 다시 쌓아올렸기 때문이다.
무엇이 그를 폐허속에서 지난 업적을 재구축하게 했을까? 저자는 그 해답을 얻고 싶어서 조던의 삶을 깊숙히 파헤친다.뭔가를 수집하고 있는 이들이 놓일 수 있는 위험한 상황은 강박이다. 수집에 대한 관심이 지나치면 수집자를 파멸로 이끄는 지점이 있다는 저 말은 일종의 떡밥이다.
사춘기에 접어든 딸에게 나는 종종 이렇게 말하곤 했다.
" 세상은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너에게 관심이 없어. 그러니까 맘 편하게 살아. "
같은 말을 룰루 밀러의 아버지도 했었나보다. 그의 직업은 생화학자였다. 같은 말이 나의 딸에게는 힘이 되었는데 룰루 밀러에게는 자존감을 떨어뜨리는 요소가 되었나 보다.
너는 중요한 존재가 아니야. 이 말을 건넨 아버지의 의도는 오만하지 말라는 뜻이었을 텐데...이 책의 주제를 이끌어가고 있는 인물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 하는 일은 새로 발견된 물고기의 이름을 붙이는 일이다.
이런 작업을 동정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름을 명명한다는 것은 지금껏 존재해왔던 생물, 사물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제한하기도 한다.
*동정 同定 identification생물의 실체를 확인하기 위한 작업으로, 해당 생물 또는 표본이 속한 분류군과 정확한 이름을 알아내는 일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 동정한 수많은 물고기 중 유일하게 자신의 이름을 붙였다는 아고노말루스 요르다니.
일본 연안에서 발견한 이 물고기는 검색을 해 보면 일반적인 물고기와 확연히 다르다.
책에서는 뫼비우스의 띠같다고 묘사되어 있는데, 날개처럼 화려한 색을 자랑하는 저 물고기는 경계를 넘어 유일무이한 존재가 되고 싶었던 데이비드의 욕망이 표출된 것은 아닐지.룰루 밀러는 데이비드 스타 조던처럼 ' 한 사람을 계속 몰아대 가는 힘'의 존재에 대해 끊임없이 탐구한다. 그런 그녀에게 사랑을 잃고 방황하는 친구를 위해 방까지 내 주었던 친구 헤더는 카프카를 이야기 한다.
사람을 살게 하는 그 무엇- '파괴되지 않는 것' . 인간 존재의 본질이랄까.
룰루 밀러는 '한 사람을 계속 몰아대 가는 힘'으로 '그릿'의 사례를 든다. 학부모나 교사라면 궁금해 마땅한 질문- 학업 성취도가 높은 학생에겐 어떤 비밀이 있는가-을 교사 출신 심리학 박사 앤젤라 더크워스는 끈질긴 투지로 번역되는 그릿을 든다.
역경 속에서도 앞으로 전진해가게 하는 힘, 그릿. 무엇이 그릿을 획득하게 하는가? 그것은 긍정적 착각이라고.하지만 모든 현상이 그렇듯이 그릿을 발동하게 하는 '긍정적 착각'이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긍정적 착각이 가져오는 자기 고양은 오만을 낳고 그 오만은 독선을 낳는다. 대표적인 사례가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 분류학자는 당시에도 외면당했던 돌턴의 우생학을 미국사회에 들여오는데 앞장을 선다. 그리고 그 영향은 잔혹한 결말을 가져온다.
우생학에 근거해 사회부적격자로 분류된 이들은 감호소에 송치되고 여성들은 강제로 불임수술을 당한다. 그런데 그 사회부적격자들로 분류된 이들에게서 룰루 밀러는 따스한 인간애를 발견한다.당신은 하찮은 존재가 아니다. 당신은 중요한 존재다.
최고 업적을 위해 맹렬하게 달려나갔던 데이비드 스타 조던. 그가 세운 어류 분류체계는 허망하게 무너진다.
분기학에 따르면 어류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가 그것을 몰랐을 리 없는데, 무엇이 그를 오도된 길로 이끌었을까.
아집으로 뭉친 그릇된 믿음은 진실을 가리고 악행을 낳는다.
인간이 지닌 오류 가능성을 부인하는 순간, 엉뚱한 체계로 인해 희생당하는 이들이 있다.
다시 책의 앞부분으로 돌아간다. 이 세상에 유일한 불변의 진리는 세상은 혼돈이라는 것이다. 혼돈은 가정의 문제가 아니라 시기의 문제라는 것. 그것만이 이 세상을 지배하는 원리라는 것. 그러니 눈앞을 가리는 직관을 넘어 세상을 호기심과 의심을 눈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또한 이 혼돈의 세상에서 우리를 살게 하는 힘은 다정함이다.
여전히 다정한 것들이 살아남는다.책에 삽입된 그림이 독특한데, 검은 칠이 된 종이를 바늘 같은 도구로 긁어서 묘사한 작품이다. 학교에서 미술 시간에 학생들이 하는 활동을 보았는데 책 속의 삽화로 이용되니 더 고풍스럽게 느껴진다.
아마도 데이비드 스타 조던을 형상화한 듯.
그는 스스로가 만든 덫에 걸려들었다.반응형'읽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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