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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김초엽
    읽다 2021. 4. 22. 16:10

    사전 정보 없이 그냥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듯한 제목,

    처음 들었을 때부터 끌렸던 책 제목이라 인근 도서관에서 빌려읽을까 하고 검색해보면 늘 대기자가 꽉 차 있다(5명)

    이과적 지식을 배경 삼아 문과적 상상력을 겸비한 작가의 작품은 설득력이 있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은 무서운 신예작가 김초엽의 SF 단편 소설집이다. 어슐러 K. 르 귄의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을 연상시키는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는 오히려 르 귄의 글보다 더 설득력있게 읽힌다.

    요즘은 책 한권을 휘리릭 읽고도 한 달 지나면 내용이 가물가물해져서 일부러 기록하며 읽는 습관을 들이고 있다. 그런데 그런 행동이 기억력을 더 잠식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어쨌든!

     

     

     

     

     7편의 단편 소설 중 몇몇은 한번쯤은 품어봤을 익숙한 가설을 정교하게 직조하여 풀어 쓴 글이다.

    " 꽃길만 걸으세요"라며 흔히 쓰는 기원의 말은 사랑하는 이가 슬픔이나 고통을 겪지 않고 평온함과 행복한 감정만을 느끼고 살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다. 그런데 평화와 행복한 감정만 존재하는 곳이 있다면 그곳 사람들은 '진정' 행복한 것일까?

    외모가 자본이 되는 시대에 의학기술이 고도로 발달된 사회가 도래한다면 우리의 외모는 지금 처럼 다양할까?

    기억도 가물가물한 오래전 <X파일>이란 외화 시리즈에서 스컬리와 멀더는 어느 행성에 도착한다. (X파일이 아닐수도 있다.) 그곳 사람들은 한결같이 가면을 쓰고 사는데 사랑에 빠진 남녀 한쌍이 가면을 벗고 연애를 하다 발각되어 동족들에게 생명의 위협을 느낀다.

    이들의 문제에 끼어든 스컬리 일행에게 종족의 수장이 나서서 가면을 벗으면 안되는 이유를 보여준다. 그들 모두 똑같이 금발에 푸른 눈, 아름다운 외모를 하고 있어 서로를 분간할 수 없었던 것이다.

    유전공학의 끝은 결국 그렇게 되지 않을까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을까>는 지구 밖 '마을'에서 성년식을 치르러 시초지를 다녀온 순례자들의 일부가 해마다 돌아오지 않는 것을 이상히 여긴 데이지가 그 비밀을 찾아 도서관을 방문하고 그곳에서 '마을'의 탄생 배경을 알게 된다.

    가장 아름다운 마을과 가장 비참한 시초지의 간극. 그 세계를 바꾸지 않는다면 누군가와 함께 완전한 행복을 찾을 수도 없으리라는 사실을 순례자들은 알게 되겠지. 53

    우리는 그곳에서 괴로울거야. 하지만 그보다 많이 행복할거야. 54

    <스펙트럼>은 외계생명씨앗가설을 들어 다른 행성에도 인간과 흡사한 존재가 살고 있을 것이라는 가정을 소설화했다.

     

    <공생가설>은 대부분의 사람들의 유년기의 기억을 잃어벌이고 사는 것에 대한 색다른 가설을 내민다.

    이미 폭발해버린 행성의 존재들이 어찌어째해서 지구에 왔고 그들은 유아의 뇌속을 헤집고 다니다 인간의 언어를 획득할 때쯤 홀연히 사라진다. 그런데 유독 한 아이는 행성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 고도의 지적 생명체인 그들에 의해 인류는 이만큼의 진보를 해 왔을지도 모른다.

    이 책의 제목인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은 현재 수준에서 상상할 수 있는 우주 개척 시대의 이야기를 다뤘다. 빛의 속도로  우주를 갈 수 없다면 인체를 냉동수면상태로 만들어 목적지까지 이동한 다음 거기서 깨어나면 되지 않는가.

    이러한 딥프리징 기술을 연구하던 안나는 가족들을 슬렌포니아 행성계로 먼저 보내고 그녀는 연구발표후 나중에 출발하기로 했다가 웜홀 통로에서 성간 항해 기술로 우주 여행 방법이 바뀌면서 가족과의 재회의 기회를 잃어버렸다.

    <감정의 물성>에서 우리의 소비가 항상 행복과 기쁨만을 추구하는 것은 아니라는 메시지를 준다.

    "소비가 항상 기쁨에 대한 가치를 지불하는 행위라는 생각은 이상합니다. 어떤 경우에 우리는 감정을 향유하는 가치를 지불하기도 하기도 해요. 이를테면, 한 편의 영화가 당신에게 늘 즐거움만을 주던가요? 공포, 외로움, 슬픔, 고독, 괴로움 그런 것들을 위해서도 우리는 기꺼이 대가를 지불하죠. 그러니까 이건 어차피 우리가 늘 일상적으로 하는 일이 아닙니까?"

    의미는 맥락속에서 부여된다. 하지만 때로 어떤 사람들에게는 의미가 담긴 눈물이 아니라 단지 눈물 그 자체가 필요한 것 같기도 하다. 215

     

    <관내분실>은 만화가 황미나의 어떤 만화를 떠올리게 한다. 엄마가 죽고 엄마의 정신을 거대한 컴퓨터에 담아 주인공 아이는 엄마가 보고싶을 때마다 그 대형 컴퓨터를 찾아간다는 이야기가 담긴 만화인데 제목을 모르겠다

    . <관내분실>의 마인드 도서관은 고인들의 기억과 행동패턴을 저장해 놓고 가족들이 생각날 때 찾아와 고인의 마인드를 접속한다는 이야기이다. 육신은  사라져도 마인드는 남아있을까?

    <나의 우주 영웅에 관하여>는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와 함께 가장 할말이 많을 것 같은 이야기이다. 인류 최초의 터널우주비행사로 선발된 이모(대안가족임) 최재경을 동경해 우주비행사가 된 가윤은 최재경이 캡슐 폭발의 희생자가 아니라 사이보그 그라인딩(우주 여행을 위해 생체 기능을 사이보그화함) 후 바다로 떠난 사실을 알게 된다.

    최재경의 사후 진실은 아시아계 여성으로 비혼모였기에 더욱 비난을 받게 되는데, 이 단편은 대안가족, 사회적 소수자, 인간의 사이보그화 등 다양한 토론 거리를 추출해 낼  수 있어 수업 시간에 읽고 얘기해 보면 좋을 듯한 소재이다.

     

    터널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특수 캡슐에 탑승한 상태에서도 극도로 높은 중력가속도, 급격한 온도 변화, 외부 압력 변화를 버텨야 했다. 사이보그 그라인딩은 인간이 터널을 지나는 극한 상황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도록 신체를 개조하는 과정이었다.
    인간을 터널 너머로 보내기 위해 인간 자체를 개조하겠다는 발상은 이 프로젝트가 강력한 비난에 직면한 이유이기도 했다. 우주 저편을 보기 위해서 인간이 본래의 신체를 포기해야 한다면, 그것은 여전히 인간의 성취일까?

    재경은 그런 것에는 의문을 갖지 않았다.

    "네. 물론 우주 저편도 기대가 되지만. 그것보다는, 저는 일단 인간을 넘어서고 싶어요.

    우리의 몸은 너무 한계가 많죠. 특히 제가 딸 서희를 가졌을 때는, 인간이 진화과정에서 해결하지 못한 문제가 얼마나 많길래 이 고생을 해야 하나 한숨이 나왔다니까요.

    더 나은 몸을 가질 수 있다면 꼭 이대로의 몸으로 살아갈 필요는 없잖아요? 인간이 앞으로 어떤 새로운 모습으로 살아가게 될지 상상하면 재미있어요. 아마 그렇게 되면, 우리가 꼭 땅 위에서 살아야 할 이유도 없겠죠." 281

    어쨌든 누군가가 그 사실을 공개해버린 이후로 재경의 택에 대한 뒤늦은 비난이 쏟아졌다. 캡슐에 탑승해서 끝까지 미션을 수행했던 두 명의 우주비행사 '영웅', 그리고 비겁하게 도망친 '배신자' 재경의 삶을 대조하는 기사들이 나왔다.

    외신에서도 파문이 일었지만 가장 비난에 앞장선 것은 해외가 아닌 국내 언론이었다. 그들은 재경을 갖가지 표현으로 신랄하게 공격했다. '국고를 낭비한', '망신살을 뻗치게 한', '국제적 망신이 된' 여자 우주비행사. 재경은 이미 떠났으므로 그 공격에 대응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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